Told by an idiot

녹색주의자가 되기는 너무 쉽다

It’s too easy being green

데이빗 오웬(DAVID OWEN) / Washington Street Journal

스스로를 환경친화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장 잘 써먹는 수법은 사치품 선호를 인류애로 치환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희생이란 새 자동차, 태양열로 물을 데우는 수영장, 여행을 더 편안하고 저렴하게 만드는 시속 300Km 고속열차, 그리고 맛있는 토마토, 뭐 이런 것들이다.

우리 모두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데에는 놀라울만큼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2010년에 진보적인 내 친구 중 하나가 일반 자동차보다 연비가 더 좋은 포드 퓨전에 태워 준 적이 있다. 계기판의 연료계에는 녹색 나뭇잎이 그려져 있었다. 필경 우리가 아무 목적 없이 드라이브를 하는 동안 배기구를 통해 환경 개선의 힘이 자동으로 배출되고 있다는 상징이었으리라.

그 차에 타고 있는 동안 뭔가 착한 바보가 된 느낌이었는데, 재활용 트럭이 가져가라고 큼지막한 캔/유리병/신문 봉다리를 집 앞에 내놓을 때에도 같은 느낌을 받는다. 환경을 걱정하는 다른 많은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프리우스-모순에 빠져 있다: 좀 덜 해로운 종류의 소비를 함으로 인해 소비 자체를 환경을 위하는 것으로 바꿀 수 있다는 믿음 말이다.

단지 우리가 쓰는 상품을 다른 걸로 바꾸는 것으로 이 세상 모든 복잡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뼛속까지 소비자이며, 모든 종류의 문제에 대해 우리가 내놓은 해답은 대체로 뭔가를 사는 것이다. 내 차가 문제야? 그럼 새 차는 뭘로 사면 되는지 알려줘. 수영장 물 데우는 방식이 틀렸다고? 그럼 다른 걸로 바꿀게. 부엌 카운터가 환경 친화적이 아니야? 바꿀게. 하지만 진정한 도전은 소비 그 자체가 문제가 될 때이다. 지구가 직면한 환경 문제의 목록은 끝이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아는 이른바 해결책들이라는 것은 환경 문제와 아예 별 관계가 없거나 심지어는 문제를 악화시키는 것들이다.

“제5의 연료"라 불리우는 ‘연비’는 특히 문제다. 2010년에 뉴욕에서 호주 멜버른까지 비행기를 탄 적이 있다. 내가 탄 여객기는 엄청난 양의 연료를 사용했고, 이산화탄소 배출량(carbon footprint)은 어마어마했다: 왕복 여행을 하는 동안 내 몫으로 사용한 제트 연료가 지구인 1명이 1년간 사용하는 평균 에너지보다 많았으니 말 다 했지.

하지만 현대 비행산업이 가져온 환경문제는 우리가 타는 여객기가 연료를 낭비한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우리가 비행기 여행을 극히 효율적으로 만든 나머지 1만마일 떨어진 곳으로 여행을 하면서 사람들이 비용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하루 종일 좁은 객석에 앉아 영화를 보고 잠 잘 일을 걱정한다는 그 점이다.

비행기 여행의 에너지/이산화탄소 문제를 논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언제나 엔진/날개/동체의 디자인을 개선하거나 컴퓨터 시스템을 이용해 비행 경로를 단축하고 대기 시간을 줄이는 데에 집중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얻을 수 있는 혜택은 극히 미미하다. 오늘날의 여객기들은 60년대 초반 모델에 비해 이미 75%나 더 효율적이다. 비행에 수반되는 물리 법칙때문에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효율에는 한계가 있다.

비행기를 공학적으로 개선하는 것은, 이전에 일어난 모든 공학적 개선이 가져온 것과 똑같은 효과를 가져올 뿐이다: 비행기 여행은 더 쉽고 더 싸고 더 편해질테고, 따라서 사람들은 비행기를 더 타게 된다. 다른 대륙에 가서 골프 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는 좋은 소식일지 모르겠지만, 에너지/기후/환경과 관련된 길고 긴 문제의 목록에 해답을 주는 데에는 별 도움이 안된다. 아니, 실제로는 해답이 더 멀어지게 만든다.

설사 당신이 기후변화를 좌파들이 만들어 낸 사기라고 믿는 다 하더라고, 이 점만큼은 여전히 문제임을 인정해야 한다: 지구의 에너지 사용량이 인구보다 더 빨리 늘어나고 있다. 이번 세기 중반쯤이면 지금의 두 배가 될 것이고, 이 중 대부분은 여전히 화석연료일 것이다. BP의 원유 유출같은 사고는 전 지구적 관심을 불러일으키지만, 환경/경제/지정학적으로 더 큰 문제는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원유가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정확하게 가져다 쓰는 바로 그 기름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술의 진보를 통해 우리의 (역자주:에너지) 중독을 치유할 수 있을 거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공학적 진보가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개선은 기계가 더 적은 연료로 더 많은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새로운, 더 가지고 싶은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소비 만족을 충족시키면서 우리는 더욱 더 나락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오늘날 논의되는 많은 “녹색 전략"이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일례로 신토불이(역자주:locavorism)는 멀리서 운반해 온 식재료 대신 가까운 데서 나는 것을 먹어야 한다는 운동이다. 한데 식재료의 “운반"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 식습관 전체가 가지는 중요도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이다.

환경적으로 훨씬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먹는가, 작물이 “어떻게” 재배되었는가, “물을 얼마나” 사용했는가, “무슨 농약"을 뿌렸고 어떻게 “가공"되었는가 등등이다. 신토불이는 올바른 선택인 것 같아서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별다른 희생을 내포하지 않는다. 내 동료중 한 명은 뒷뜰에서 닭을 키워서 달걀을 직접 얻는다. 하지만 이를 위해 닭들을 차에 싣고 수의사를 보러 다니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아침 밥상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만만치 않게 된다.

우리가 선의에서 비롯된 행동을 할 때조차 우리의 행동과 목적이 엇갈리는 경우는 다반사이다. 조명의 효율을 높이면 여기저기 불을 더 켜게 된다. 교통 체증을 줄이면 대중교통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겠지만 결국 도시의 난개발을 낳는다. 에탄올 거래가 자리잡으면 식량을 재배할 땅이 전용되어서 전지구적 기아가 악화된다.

다들 점점 악화되는 환경문제를 우려하고 있으며, 과학자/환경운동가/정치인 기타 등등이 정신을 차리고 효과적인 해답을 내놓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믿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인즉 우리 모두가 이미 해답을 충분히 알고 있다. 심지어 오랫동안 알고 있었다. 다만 그 해답이라는 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다.

1958년에 뉴욕에서 멜번으로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면 2010년에 내가 탔던 것 보다 연료는 더 많이 소비했지만, 더 “환경 친화적"이었다. 중간에 샌프란시스코/하와이/칸톤섬/피지/시드니에 멈춰야 했기 때문에, 여행객 각각은 미국 중산층 가정 1년 소득의 1/4정도의 돈을 써야 했다. 편도에.

만약 오늘날에도 훨씬 더 느리고 비싼 비행기 표만 있었다면, 나 뿐 아니라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탔던 대부분의 승객들은 그냥 집에 머물렀을 것이다. 환경에는 이익이지만 세계 경제에는 손해이다. 장기적으로 비행기 여행의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비행기를 덜 타는 것이다. 기술적 변화가 아니라 행동의 변화 말이다.

하지만 집에만 있으면 심심하다는 것이 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