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은 성차별적인가? 스티븐 모팻의 바람난 여자들
Is Sherlock Sexist? Steven Moffat’s wanton women
제인 클레어 존스(Jane Clare Jones)
지난 일요일 밤 아이린 애들러의 자줏빛 손톱이 화면을 스치는 바로 그 순간, 스티븐 모팻이 재해석한 홈즈의 그 유명한 여성 맞수가 논란을 불러일으키리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거의 천만명이 시청했다는 셜록 새 시즌의 오프닝은 아더 코난 도일이 쓴 “보헤미아의 스캔달(A Scandal in Bohemia)“의 개작이다. 원작에서 홈즈는 의외로 보헤미아 국왕의 부적절한 사진을 가진 비상한 미국인 모험가 여성에게 한 방 먹는다. 모팻은 홈즈가 원작에서 “그 여자(the woman)“이라고 불렀던 캐릭터를 죽음의 위기로부터 우리의 영웅에 의해 구원받는 상류층 도미나트릭스로 바꿔 놓았다. 코난 도일의 원작도 성평등의 신기원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2012년 극중에서 여성의 역할이 1891년보다 못하다면 뭔가 크게 잘못 된 게 틀림 없다.
셜록 홈즈 이야기는 여러 면에서 모팻의 재능과 딱 들어맞는 소재이다. 퍼즐로 가득 찬 플롯, 두 남자 사이의 끈질긴 우정, 구질구질한 “여성적"인 감성에 비해 “남성적"인 이성에 대한 페티시에 가까운 집착 등, 어딜 봐도 모팻과 딱이다. 그가 닥터 후를 맡았던 동안, 모팻은 모든 여성 캐릭터를 “닳고 닳은” 스테레오 타잎(갸녀린/차가운/유혹적인/어머니)으로 찍어냈고 닥터와 컴패니언 사이에 그럴 듯한 극적 긴장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한 적이 없다. 이는 닥터 후 극본에 동력을 앗아가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셜록에서는 아예 이런 문제 자체를 지워버린 듯 하다.
닥터 후는 그저 매력적인데다가 엄청 똑똑하기까지 한 외계인 이야기가 아니다. 닥터는 다른 사람들을 걱정하고, 자신의 두뇌를 이용해 부정, 폭정, 탈취와 싸운다. 반면에 (모팻이 만든) 홈즈의 존재 이유는 단 하나, “이성(理性)“이다. 자기가 보기에 충분히 자극적이지 않은 사건은 그저 “지루하다"고 치워버린다. 원작 보헤미아의 스캔달 도입부에서 코난 도일은 감정이란 “지각 기관에 걸린 자갈”, “세계 최강의 추리/관찰 기계"에 걸린 스패너 정도로 격하하면서 시작한다. 달렉의 사악함이 인간의 감정을 배제하는 데에 직결되어 있었던 닥터 후와 달리 코난 도일의 세계관은 초 이성 중심의, 그야말로 모팻을 위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모팻이 아이린 애들러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흥미로운 주제였다. 어떤 면에서 코난 도일이 창조한 애들러는 원조 페미니스트였다: 뛰어난 지능과 강력한 실행력을 지니고 홈즈의 맞수로 우뚝 선 존재였기 때문이다. 물론 원작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작가인 코난 도일과 주인공인 홈즈 모두 애들러를 진지하기 여기는 이유는 바로 그녀가 “강철과 같은 영혼” 그리고 “가장 결단력있는 남자의 두뇌"를 지녔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애들러의 가치는 그녀가 자신의 성별을 뛰어 넘어 상징적인 남성이 되었다는 데에 있었다. 원작의 클라이맥스에서 애들러는 잠시 감정의 희생양이 되어, 다른 모든 여자들이 그렇듯이 위험에 처했을 때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보호하려고 한다(홈즈에 따르면 이는 언제나 아기 아니면 귀금속이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 애들러는 침착하게 생각할 시간을 가진 뒤 탈출구를 마련하고 홈즈에게 한 방 먹인다.
한데 이 정도 수준의 애매모호한 여성 파워마저도 모팻에게는 참기 힘든 것이었나 보다. 물론 그가 애들러를 똑똑한 캐릭터로 남겨 뒀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의 판단력과 행동력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약화되었다. 이른바 남자 잡아먹는 팜므 파탈이라는 전형을 뻔뻔하게 투사하면서 모팻은 애들러의 힘을 지능이 아닌 “남자들이 뭘 좋아하는 지” 알고 “원하는 것을 주는” 것, 남자들의 성적인 약점을 잡아서 목줄을 채우는 것으로 바꿔 놓는다. 애들러가 꾸민 완전범죄의 계획이라는 것도 종국에는 스스로 생각해 낸 것이 아니라 홈즈의 천적인 제임스 모리아티가 만들어 준 것으로 밝혀지고 만다. 블로거 스태버스(Stavvers)는 이를 두고 애들러가 “능동적인 캐릭터에서 홈즈와 모리아티 사이의 수컷 싸움에 끼어든 수동적인 장기말"로 바뀌었다고 평했다.
더 큰 문제는 모팻의 애들러는 그나마 홈즈를 이기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레즈비언임을 밝힌 뒤에조차 애들러의 계획은 “계집애같이(강조는 역자)” 셜록에게 반한 것 때문에 망가지고 만다. 에피소드의 시작부터 그렇게 지키려고 했던 비밀을, 고작 연습장에 하트 그리는 수준의 제스쳐(역자주: 핸드폰의 암호)때문에 내주고 마는 바보짓을 저지르는 것이다. 그 결과, 남자를 사랑했다는 약점을 드러낸 후 모팻은 애들러를 안전 보장 장치 없이 바깥 세상으로 내보내고, 우리가 이해 못했을까봐 홈즈를 통해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 준다: “감상이란 패자만 가지는 화학적인 오류야”
그리고 입이 딱 벌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부계 사회의 판타지 탑 10중 두 가지를 완벽하게 버무려 낸다. 여성의 성적 권력, 그리고 끈질기게 들려 오는 오르가즘을 알리는 텍스트 메세지 소리를 두려워 하는 남자들은 이 요부가 무릎을 꿇은 채 목이 날아갈 위험에 처한 것을 보게 된다. 동시에 우리의 영웅은 느닷없이 나타나 위기에 처한 여성을 구한다. 메두사와 페르세우스, 라푼젤과 왕자님이 겹쳐진다. 상징적인 면에서는 그야말로 인상깊은 장면이었다. 하지만 여자도 그저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우리같이 정신 나간 사람들에게 이 마지막 장면은 매우 퇴행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