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ld by an idiot

영국 폭동: 약탈의 심리학

지난 며칠간 런던과 잉글랜드 곳곳에서 진행중인 폭동과 약탈에 대해 Guardian에 Zoe Williams가 기고한 컬럼이다. 한국에서 이번 사태를 보는 시각은 주로 한국 경찰의 시위 진압 행태와 관련해 “선진국에서는 저 정도 시위까지 한다"라던지 “그래도 물대포를 쓰는 데 총리 승인까지 필요로 할만큼 조심한다"는 등의 관찰이 주를 이루는 것 같고, 트위터에서는 “우익테러"라는 표현마저 본 적이 있는데 사태의 본질은 좀 복잡미묘하다. 대체 왜 이렇게 됐는지에 대해 별다른 답은 나오지 않았고, 앞으로 지리한 정치적 공방이 벌어질 확률이 높다. 이면을 들여다보는 데 조금 도움이 될까 싶어서 컬럼을 옮겨보았다.

영국 폭동: 약탈의 심리학

이번 충격적인 약탈 사건들은 정치적 행위는 아닐지 모르지만, 여전히 폭동에 가담한 하층민들의 삶에 대해 웅변하는 바가 있다.

조 윌리엄스(Zoe Williams) / Guardian

런던이 불타기 시작한 다음 날, 급진 좌파이자 Wood Green(역자주: 이번 폭동이 시작된 Tottenham에서 멀지 않은 런던 북부 지역) 주민인 클레어 폭스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일요일 아침쯤에는 사람들이 그저 H&M을 약탈만 한 게 아니라, 훔친 옷들이 맞는지 입어보기까지 한 모양이다. 월요일 저녁에는 Clapham Junction(역자주: 탬즈강 남쪽 동네로, 보통은 젊은 직장인들이 많이 사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곳으로 여겨진다)에 있는 백화점 Debenhams가 털렸는데, 짗굳게도 온 거리가 Debenhams 쇼핑백을 든 사람들로 가득 찼었나보다. 이 사건이 벌어지기 몇 시간 전만 해도 나는 이번 사태가 런던 북부에만 한정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폭스는 이번 폭동이 허무주의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치적인 동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공동체 의식이나 연대의식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인데, 그 점만큼은 동의할 수 밖에 없다. Hackney(역자주: 역시 폭동 지역에 가까운 북부 런던)에 사는 어떤 용감한 여성이 말했듯이 “무슨 동기가 있어서 모인 게 아니라 Foot Locker(역자주: 스포츠 용품 체인점)를 털려고 모인 거다.”

만약 빵이나 우유같은 생필품을 훔쳤다고 하면 약탈을 고귀한 행동으로 가까스로 포장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운동화, 심지어 랩탑을 훔쳐놓고 그렇게 우길 수는 없는 짓이다. Clapham Junction에서 피해를 입지 않은 유일한 가게는 Waterstone’s(역자주: 대형 서점 체인)이었고 Boots(역자주: 대형 약국 체인)를 턴 폭도들은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엄청난 양의 Immodium (역자주: 설사약)을 훔쳐갔다. 이것을 두고 트위터에서는 밤새 폭도들이 얼마나 못배운 이들이고 소화불량으로 고생하고 있는지를 두고 떠들썩했다. 이 조롱은 지나갔지만, 이번 약탈이 소비 취향에 기반을 둔 일종의 “쇼핑 폭동"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건 정말 새로운 현상이다. 공권력이 폭력을 휘두르고, 여기에 대항해서 시위가 벌어진다 - 여기까지는 오래된 이야기다. 하지만 쇼핑몰을 차례로 터는 군중? 경찰과의 접촉은 최대한 피하고, “feds(역자주: 미국 드라마를 따라 10대 젊은이들이 경찰을 지칭하는 속어)“가 도착하기 전에 JD Sports(역자주: 스포츠 용품 체이점)를 털어 나오려는 폭도들? 새롭다.

월요일 오후 5시경, 용감한 Lewisham(역자주: 런던 동남부 지역)의 맥도널드 지배인이 가게 유리창이 깨지는 것을 보며 “내일은 영업을 못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즈음에는 나는 허무주의에 기반한 설명을 포기했다. 어떻게 법과 질서, 도덕적인 우주, 협동, 존재의 이유 등을 믿지 않으면서 스포츠용품에 대한 믿음은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문화(culture)를 경멸하면서 동네 북메이커(역자주: bookmaker, 경마나 축구 경기 등에 돈을 걸어주는 가게)에 걸린 평면TV는 욕심낼 수 있단 말인가? 노팅엄 비지니스 스쿨의 마케팅/소비자 전문가 Alex Hiller는 사회적 무질서(anomie)와 소비주의(consumerism)는 서로 반목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보드리야르며 여타 사회학자들에 따르면 소비는 사회 생활의 왜곡(falsification)입니다. 광고는 환상속의 나라를 선전하죠. 소비주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소외감을 느끼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보드리야르는 제쳐두고라도, 폭도들이 정치적 아젠다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서 이번 문제의 해답이 정치적이 아닌 것은 아니다. Theresa May(역자주: 내무부장관), 그리고 단지 보수주의자들 뿐 아니라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이번 사태가 그 어떤 상위 목표도 없는 “명백히 범죄"임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은 새로운 정보라기 보다는 알려진 사실의 강조일 뿐이다 - 가게 창문을 깨고 물건을 훔치는 게 범죄인 줄 모르는 사람도 있나? 여기에 숨겨진 메세지는 “우린 말장난에 속지 않겠다"는 것이다: “일단 사태만 진정되면 이 범죄자들은 범죄자들이 마땅히 가야 할 감옥으로 보내질 것이다.”

사회 질서에 (공무원들만큼)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우리같은 사람들은 사태의 이면을 좀 더 깊숙히 들여다 볼 여유가 있다. 이번 사태에 대한 권위주의적 해석은 이번 사태의 책임이 그간 길러진 희생자 문화와 사회적 관대함에 의해 배양된 잘못된 권리의식(false sense of entitlement)을 가진 젊은 세대들에게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이번 사태는 “나 스스로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기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줬어야 하는가"하는 생각만을 가진 이들 - 대부분은 전에도 소규모로 무언가를 훔쳐 본 적이 있지만 죄값을 치루지도 않았던 이들 - 에 의해 저질러진 미화된 도둑질일 뿐이라는 것이다.

권의-자유주의 스펙트럼의 정 반대쪽으로 넘어가면 Independent지에 감동적으로 서술된 Camila Batmanghelidjh의 견해와 마주치게 된다. 이번 사태는 빈곤의 잔인함에 대한 자연스런 인간적 반응이라는 것이다: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임대주택 복도에 버려진 콘돔과 주사바늘을 지나 엘레베이터에 타면, 운 좋아야 오줌 찌린내를 맡는 것으로 끝나고 운이 없으면 강간당할 수도 있는 환경… 소유로 가득한 사회에서 끊임없이 소외되는 이들에게 이것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일회적인 위협이 아니라 상시적인 굴욕감이다. 게토에 사는 젊고 똑똑한 시민들은, 왜 자신들이 도움을 바라는 것조차 사치로 느껴지는 어두운 영국의 구석으로 밀려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원한다.”

보다 실용적인 해석은 이 두 가지 극단 사이 어딘가에 존재한다: 이번 사태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지금 구입할 돈도 없고, 앞으로도 영영 구입할 형편이 될 리 없을 것 같은 상품들에 끊임없이 노출될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Hiller 또한 이 견해에 동조한다: “소비 사회는 구성원들이 소비행위에 동참할 여력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소비자라고 인식하는 존재는 짧은 근로시간, 높은 임금, 그리고 신용구매 가능성에 기반을 둔 존재입니다. 이 중 마지막 두 가지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소비사회라는) 계약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약탈자들은 평소에 자기들이 가서 쇼핑할만한 가게들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사람들은 아마 원래 자기 몫이어야 할 물건들을 살 돈마저 없게 만든 사회 시스템 자체에 저항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약탈당한 상품의 종류를 보면 이 점이 더 분명해진다. 만약 폭도들이 생필품을 훔쳤다면 나는 보다 공감했을 것이다. 한데 내가 잘못 본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약탈자들이 배가 고파서 그러는 것 같지는 않다. 아예 더 끝장나는 사치품들, 그러니까 티파니나 구찌 가게를 노렸더라면 약탈이 보다 정치적으로, 따라서 더 존경할만하게 보였을 수도 있다. 폭도들의 아킬레스 건은 자기들이 정말 티나게 원하는 물건들만을 노렸다는 점이다.

범죄 심리학자 Kay Nooney는 예산 삭감, 특히 등록금 인상이 이번 무법사태에 기여했다는 주장을 황급히 떨쳐낸다. “이 사람들은 등록금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예요. 그 구성으로 볼 때, 이번 사태는 감옥에서 벌어지는 폭동과 비슷합니다. 격리 동에서는 아무도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지만, 누군가 이러저러하게 다쳤다더라 하는 소문이 퍼집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도덕적인 분노로 시작된 것이 결국 자기 이익을 쫓는 복수 행위로 이어집니다. 고상한 목적이 있다기 보다는 충동적인 행동패턴을 보이는 다수의 사람들이 일종의 거대한 모험을 벌이는 거죠.”

물론 감옥과 이번 사태의 차이점은, 수감자들은 이미 자유를 뺏긴 몸이라는 거다. 거리의 젊은이들이 이미 감금된 수감자들처럼 행동하고 있다면 뭔가 이미 크게 잘못되었음에 분명하다. 또 다른 범죄학자 John Pitts 교수가 지적하듯이: “가담자들 중 상당수는 저소득/고실업률 주택단지 출신들이고, 전부가 아니라면 이들 대부분에게는 그다지 뾰족한 미래가 없습니다. 아무 것도 잃을 것이 없는 젊은이들에 대해 사회가 무언가 대답해야 합니다.”

“잃을 것이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폭동에 가담한 이들은 도무지 자신들의 행위가 처벌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언론에 보도된 이미지들 중 가장 충격적인 것들은 복면이나 스카프로 자기 얼굴을 가린 젊은이들의 사진이다. 하지만 카메라폰에 찍힌 장면 혹은 뉴스 화면에서 실제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굴을 가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청소년 수용시설의 감소와 감옥의 수감자 수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들 사이에서, 어쩌면 사람들은 자기들이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를 안하게 된 것 같다 - 적어도 운동화 한 켤레 훔친 것 가지고는. 이점에 있어서는 좀 측은한 마음이 든다. 지금처럼 대규모 사태가 아니라면, 아닌게 아니라 감옥에 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공공의 안녕에 위협이 되는 상황이라는 판단이 서면, 판사들은 상당히 잔인해질 수도 있다(Charlie Gilmour를 생각해보라 - 역자주: 등록금 시위 도중 1차대전 전몰자를 기리는 추모비에 올라섰다가 실형을 선고받은 Pink Floyd 기타리스트 David Gilmour의 아들). 또 하나, 이번 사태에 샬짝 초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것은 폭도들이 사용하는 어휘이다: 마치 자기들이 The Wire(역자주: 미국 경찰 드라마)에 출연이나 하는 것처럼, 이들은 경찰을 “the feds(역자주: FBI를 칭하는 미국식 속어)“라고 부르면서 이런 멜로드라마틱한 문자메세지를 주고받고 있다: “So if you see a brother . . . SALUTE! If you see a fed . . . SHOOT!”

월요일 밤 늦게, 트위터에는 Dalston의 Stoke Newington Road 부근 터키인 상점 주인들이 야구방망이를 들고 폭도들을 막아내고 있다는 소식이 올라왔고 누군가 트윗했다: “망할 놈의 이민자들, 우리 나라에 맘대로 와서 우리 공동체를 지키다니(Bloody immigrants. Coming over here, defending our boroughs & communities).” 그제서야 나는 우리 동네를 지키기는 커녕 밖에 나가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Sky와 BBC의 생중계를 교대로 돌려보면서 사태가 얼마나 흥미로운지만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에는 내 귀에 들리는 경찰 헬리콥터 소리가 TV에서 나는지 아니면 우리 동네 하늘에서 나는지도 구분할 수 없었음에도 말이다(실제로 우리 동네에 헬기가 떠 있었다.)

Dalston 사태는, 비록 언론에는 JD Sports가 이번 사태와 관련해 간판처럼 등장하는 가게가 되었지만, 대형 체인점들만 손해를 입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모퉁이 자영업자, Welwyn Garden City에 본부 건물이 있고 든든한 보험에 든 프랜차이즈 상점이 아닌 구멍가게들이 술과 담배때문에 습격을 받았다. 체인점이 공격받으면 그 기업적인 속성 때문에, 법과 질서의 부재를 걱정은 할망정 감정적으로 대응은 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동네 구멍가게가 당하면, 무법천지는 희생자를 배출하고, 우리 모두가 분개한다. 바로 이 부분이 이번 사태를 보는 핵심이다: 훔쳐간 물건이 아니라, 그 물건 뒤에 서 있는 사람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