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 스피치가 보여주는 공화주의자들의 난제
(영화를 무척 재미있게 보고 나서 Guardian에 실렸던 영화 관련 기사 중 인상적이었던 몇 편을 옮겨보기로 했다)
The King’s Speech가 보여주는 공화주의자들의 난제
-조나단 프리드랜드(Jonathan Freedland) / 가디언 2011년 1월 18일
영화 시상식 철이 돌아오면 배우들은 다음 목록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동료인 Hadley Freeman이 얄궃게 지적했듯이 신체 장애나 정신 질환, 학대의 경험을 가진 인물 또는 외국어 억양으로 말하는 인물, 혹은 정말 최소한 동성애자 역할을 연기한 적이 없다면 오스카에 대한 꿈은 접어두는 게 좋다: 못받는다.
한데 영국 출신 배우들에게는 이와는 다른 카테고리가 하나 있으니 바로 이것이다: 오스카로 향하는 길은 산드링엄(Sandringham - 역자주:윈저家의 공식 휴양지), 윈저 혹은 SW1(역자주:버킹엄 궁의 런던 우편번호)을 통한다. 오스카 동상을 염원하는 영국 배우라면 왕족을 연기하든지, 최소한 귀족 역할은 맡아야 한다. 푸른 피(역자주:귀족을 가리키는 영국식 표현)를 가진 척 하는 것이야말로 수상에의 지름길이다: 여왕 흉내를 낸 헬렌 미런이라든지 고스포드 파크에서 위아랫층을 오가며 고상한 척을 한 쥴리언 펠로우즈던지.
상기한 현상의 가장 최근 수혜자는 물론 The King’s Speech이다: 오늘 발표된 BAFTA 후보작 목록을 봐도 그렇거니와 이미 오스카 시상식날 위업을 이룰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니 말이다. 미국인들은 왜 이런 류의 영화를 감싸고 도는 걸까? 아마츄어 심리학자로써 진단해보건데 이것은 집단 투사(collective case of projection)의 일종인 것 같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스스로의 어떤 면 - 이번 경우에는 위계질서(hierarchy)와 사회적 계급(class) - 을 골라낸 다음 이것을 다른 이들 - 이번 경우엔 우리 영국인들 - 에게 덮어씌우는 경향이 있다. 미국에는 딱딱한 계급 기반의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 그런 건 영국에나 있거든. 이 논리를 따르자면 영국은 불평등과 계급 고착의 땅인 반면 미국은 그 반대의 사회로써 은근히 떠받들어진다. 미국인들이 The King’s Speech나 Downtown Abbey같은 영화를 사랑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런 류의 이야기들은 그들이 뒤에 남기고 떠나온 나라가 얼마나 후졌는지 보여줌으로써 그들 자신을 칭송하는 효과를 가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가 우리 영국인들 자신에게도 이렇게 잘 먹히는 이유는 또 뭘까? 말할 것도 없이 탐 후퍼의 이번 영화가 극본/연출/연기 모든 면에서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으며 시작부터 끝까지 눈을 즐겁게 하는 작품이라는 점이 한 몫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Mad Men 효과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 기막힌 티비 프로그램 또한 관객들을 칭송한다: 1960년대 등장인물들이 얼마나 끔찍히 성/인종차별주의자인지 까발림으로 인해 오늘날의 시청자들이 얼마나 진보적인 존재인지를 칭찬한다는 뜻이다.
The King’s Speech로 말하자면, 영화 속 세상은 아직도 왕족에 대한 각종 예의범절이 넘쳐나던 시대로, 매 장면마다 말더듬이 왕족이 평민 언어치료사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가당치않은 일인지 묘사하는 것을 빼놓지 않는다(도움을 구하는 것이 그럴진데 하물며 둘이 우정을 쌓는 다는 것은 더더욱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70년 전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관객은 “우리가 한 때 그랬을지언정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확신을 하게 된다. 그 뻣뻣함, 그 잘난체, 그런 건 다 옛날 이야기지 뭐.
문제는 The King’s Speech에 나오는 세계가 현재와 완전히 단절된 과거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일단 현재 런던 시장, 그리고 현 정부 인사들 몇몇이 교육받아온 방식이 1939년에 영국을 다스린 국왕이 받은 교육과 눈꼽만큼도 다르지 않다는 점에 주목해보자(역자주:런던 시장 Boris Johnson및 보수당 정부의 많은 구성원이 전형적인 사립학교 출신 엘리트임을 가리킴). 왕실에 대한 존경으로 말하자면, 그 또한 사라지지 않았다. 윌리엄과 케이트의 왕실 결혼식이 예정된 날 노조가 파업을 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두고 사람들이 보인 공포스러운 반응을 떠올려보라: 감히 그런 반역적인 행태를!
영화 속 카메라는 두 번에 걸쳐 가상의 BBC 조정실을 보여준다: 각종 방송장비에 붙은 푯말들은 왕의 연설의 청취자들이 버마에서부터 윈드워드 군도에까지 걸쳐 얼마나 넓게 퍼져 있는지 일깨워준다. 이 장면의 원래 의도는 “잃어버린 우리의 제국 아래 한 때 존재했으나, 지금은 윈저성에서 무슨 꿍꿍이를 벌이든 별 관심이 없을 나라들"을 관객들에게 상기시키는 것일테다. 한데 지난 달에 뉴질랜드를 방문했을 때, 나는 “케이트와 윌리엄"에 관련된 잡지며 기념품이 얼마나 많은지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심지어 남극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저 남쪽 군도에까지도 퍼져 있었으니까.
물론 그 때와 지금이 똑같다는 말은 아니다. 한 때는 왕가의 권위가 장엄함과 힘에 의존한 것이던 시절이 있었다(영화 속에서는 조지 5세에 의해 이런 가치들이 표현된다). 하지만 전후시대에 이르러서는 왕가도 변화를 피할 수 없었다: 왕실은 스스로를 “(단지) 매우 특별한 보통 가족"으로 내보였다. 그 정점은 1969년의 실사 다큐멘터리 “Royal Family"였는데, 이 프로그램은 여왕이 왕실의 마법을 일반에 너무 많이 내보였다고 느낀 이후에 조용히 폐지됐다(지금 National Portrait Gallery에서 한시 상영중이다).
The King’s Speech에 따르면, 오늘날 왕족들이 대중의 애정을 얻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여타의 셀러브리티들이 했던 방식을 따라 스스로가 고난을 극복하는 모습을 내비치는 것이다. 이 공식에 따라 관객들은 “버티(Bertie)“의 차갑고 폭력적인 - 왼손잡이라서 매를 맞고 사악한 유모에 의해 밥이 굶겨지는 -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동정심을 느낀다. 이를 통해 영화는 관객들이 조지6세를 그의 위엄 때문이 아니라 그의 연약함 때문에 사랑할 것을 주문하며 왕실의 다이애너비化를 2세대 전으로 밀어붙인다.
하지만 이 모든 장치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감성적 핵심은 다른 곳, 정확히 말해 제2차세계대전에 놓여 있다. 만약 왕이 즉위식 연설을 위해 연습하는 것이 다였다면 관객들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왕이 개전에 즈음하여 국가 전체를 향해 연설을 해야 한다는 바로 그 지점이 이야기에 도덕적인 힘을 부여한다. The King’s Speech는 제2차세계대전이야말로 국가로서 영국을 정의하는 내러티브이며, 거의 영국의 창조신화의 위치에 도달했다는 방증이다. 프랑스에 1789년이 있고 미국에 1776년이 있다면 영국에는 우리가 홀로 나치의 위협에 맞섰던 1940년이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역사에 대해 배우는 것은 바로 이 시절에 대해서이다: 여타의 역사는, 제국의 역사를 포함해서 점차 희미해져간다. 위대한 영국인을 뽑으라면 우리는 윈스턴 처칠을 뽑는다.
사실인즉 윈저家는 우리 섬의 역사 중 이 장(章)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적합한 화자가 아니다. 영화에서도 드러나지만 에드워드 8세는 히틀러의 추종자였다. 영화에서 드러나지 않는 부분은 왕실의 나머지 구성원들도 그 쪽으로 마음이 상당히 기울었었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성인으로 추대되는 버티마저도 39년 봄 외무장관인 할리팩스경에게 독일을 떠나려는 유대인들을 막았으면 좋겠다는 메세지를 보낸 바 있다. 할리팩스경은 왕의 말에 따랐다: 베를린에 보낸 통신문에서 그는 유대인들의 “무허가 이주를 감시해달라"고 주문했다(여담이지만 오스카를 둘러싼 경쟁은 정치적으로도 달아오르기 마련이라, The King’s Speech의 라이벌들은 이런 역사적 사실을 들어 반대 의견을 표명하는 중이다).
하지만 The King’s Speech에서 가장 중요한 왕가의 인물은 조지6세가 아니다. 그 영광은 영화 내내 몇 마디 하지도 않는 인물, 바로 어린 엘리자베스 공주에게 돌아간다. 영화 속 엘리자베스 공주의 등장은 관객들에게 오늘날의 여왕이 역사적이다 못해 이제는 신화적인 사건을 직접 체험한 존재라는 사실을 경종을 울리며 일깨운다. 생각해보라: 여왕은 지금까지 12명의 총리들과 주간회의를 해 온 사람이고, 그 12명 중 첫 번째는 처칠이었다. 어린 영국인들에게는 거의 넬슨이나 웰링턴만큼이나 거인의 반열에 오른 그 처칠 말이다.
바로 이 사실이야말로 여왕이 우리의 집단적 상상력을 붙들어 매놓을 수 있는 원동력이다. 여왕은 우리들 스스로의 탄생신화에 연결된 살아있는 증거이다. 사실인즉 여왕은 전세계의 모든 공인 중 제2차세계대전과 진정한 연관을 가진 거의 유일한 생존인물이다. 이 점에다가 젊은이나 나이 든 사람 모두가 그녀를 변치 않는 존재로 여기게 해준 그녀의 장수를 덧붙이면 왜 공화주의자들이 여왕을 내몰려는 어떤 시도에 대해서도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인지가 분명해진다.
The King’s Speech는 공화주의자들, 그러니까 언젠가 여왕이 세상을 떠나면 군주제를 뭔가 더 공평하고 민주적인 체제로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거대한 도전과 맞딱뜨리게 될 것인지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공화주의자들이 이겨내야만 하는 것은 단순히 체제니 투표니 하는 것들에 대한 논쟁이 아니다. 공화주의자들은 윈저家를 국가적 기억의 보관함 역할로부터 끌어내려야 하는 것이다.
가족이 가지는 일일드라마스런 매력을 고려할 때,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공화주의자들은 이 세련되고 사랑스러운 영화를 보려고 줄을 서는 관객들의 관심을 왕의 연설로부터 그 연설을 경청했던 수백만의 사람들에게로 돌려야 할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