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
ESEC/FSE 2022에서 정말 바쁜 닷새를 보내고 돌아온 뒤, 그 감흥이 다 사라지기 전에 몇 자 적어본다. 나는 학술대회 참석을 좋아한다. 해외에 가려니 시차와 긴 여행때문에 지치고 피곤하지만, 가 있는 동안 그리고 다녀온 뒤에 느끼는 흥분감이랄까, 일종의 하이(high)가 있다.
이것은 학회 참석이 단순히 해외 여행이어서만은 아니다. 물론 가보지 못한 새로운 장소에 가는 흥분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물리적인 장소의 변화가 전부는 아니다: 학회에는 정신적인 여행이 포함되어 있다. 참가자는 학회 기간 동안 자기 머리를 반복되는 일상에서 분리해서 오직 학회의 주제만 생각하도록 내버려둘 수가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호텔에 묵으며 때가 되면 제공되는 커피와 식사로 연명(?)하니 의식주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고, 출장 중이라는 핑계로 당장 급하지 않은 다른 이메일들은 잠깐 미뤄 둘 수 있다 (물론 나중에 혹독한 댓가를 치른다…). 대신에 하루 온종일 방금 들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이야기, 우리 분야는 대체 어디로 가는가 하는 이야기, 내년 학회는 어디에서 하는 게 좋은가 하는 이야기, 인공지능은 정말 대체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일상에서 누리기 힘든 호사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바깥 사람들이 보면 유치해보이거나 아니면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몰라 고개를 저을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은 사람들로 주변이 가득하다!
연구라는 길에 들어온 지 얼마 안되는 사람들은 아는 얼굴은 하나도 없고, 언어 장벽은 물론이거니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 지 모르겠고, 남들은 다 이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저 이야기를 나만 모르는 것 같고 해서 학회 참석을 곤욕으로 여기기 쉽다. 자기 논문을 발표하는 행운이 함께하더라도, 발표 자체의 중압감도 있고 누가 무슨 질문이라도 했는데 답을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이럴 때 꼭 기억해 둘 몇 가지가 있다. 첫째, 내가 아는 절대 다수의 연구자들은 남들에게 친절하다: 자기 연구에 관심을 가져 주면 고마워하고, 남이 뭘 하는지도 잘 듣는다. 경험적으로 터득한 법칙이 있다면, 일가를 이룬 대가일수록 더 친절하다 (다만 워낙 일이 많아서 바쁠 수 있을 뿐이다). 행여 나를 무시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둘째, 남들도 모든 것을 다 알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척척박사가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당신이 학회에서 만날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니 안심하자. 만약 서로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고 싶다면, “첫 참가자 점심 모임(First-comer’s Lunch)“같은 이벤트를 활용해도 좋다. 셋째, 첫 학회가 어렵더라도 이내 포기해버리지 말고, 자기 연구가 발전하면서 참여의 경험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스스로 복기해보자. 스스로 만든 결과가 조금이라도 생기면, 남들 이야기도 더 잘 이해되고, 자신감도 더 생긴다.
학회에서 돌아오면, 고단한 여행이 끝나서 홀가분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야단법석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일상이 천천히 돌아오면서, 특별히 재미있었던 이야기 중 일부는 다음 연구로 이어질 것이고, 나와 생각이 비슷했던 사람끼리 공동 연구의 길도 열릴 것이고, 이 결과들은 운이 좋다면 다음번 학회 어딘가에서 발표될 것이다. 다음에 함께 모여 연구 이야기만 하는 호사를 누릴 때까지, 모두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