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27일, Hyderabad, India
(한참 나중에 붙이는 주석: 아래 여행기(?)는 Google Test Automation Conference에 2010년에 초대받았을 때 적은 글이다.)
런던-하이데라바드 직행은 새벽 5시 무렵에 착륙했다. 이 직항편을 이용한 사람이 꽤 됐기때문에 구글이 보낸 픽업맨은 나뿐 아니라 여러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Jeff Offutt 아저씨가 서 있어서 둘이 잡담을 좀 하다가 호텔로 향했다. 6차선 도로를 어슬렁 가로지르는 소를 지나서 40분가량 달리자 Hi-Tech City에 있는 Novotel/Hyderabad International Convention Centre 도착. 너무 아침 일찍이라 방이 준비 안돼있는 대신에 아침 부페를 이용하랜다(나중에 보니 돈도 안받았다 오). 밥먹고 나오니 운좋게 방 배정.
한 두어시간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까 Robert가 우리 발표할 슬라이드 최종조율을 하게 만나잔다. 호텔에서 차를 불러서 구글 오피스로 출발, 밥 얻어먹고(물론 커리) 잠깐 이야기하고 나니까 오후 3시경.
뭘 할까 하다가, 컨퍼런스 끝나면 다음날 새벽 비행기로 돌아가야하니까 그래도 어디 한 군데 나가봐야지 하면서 구시가 중심에 있는 Charminar와 Mecca Masjid에 가보기로 한다. 건물 경비원한테 Charminar로 가려면 무슨 버스를 타야되냐고 묻는데 도무지 못알아먹는다. 종이에 적어서 보여주니 그제야 “아 차-르 미나르” 그런다. “차-미나르"라고 하면 안됨;; 바로 가는 건 없지만 187K를 타고 가면 근처까지 간덴다. 이 “근처” 개념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는데 나중에 밝혀진다.
187K를 기다렸다 올라타서 100루피 지폐를 내밀었더니 거스름돈 없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한다. 거리엔 버스 정류장이 정확히 표시되어 있지도 않고, 버스가 제대로 멈추지도 않는다. 버스엔 문도 없고, 적당히 속도를 줄이면 알아서 뛰어 내리던지 올라 타던지 해야한다. 한참을 달렸더니 90루피를 내주면서 다음에 내리랜다.
여기가 어딘가 하면서 $0.99에 산 하이드라바드 오프라인 맵을 켜봤는데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GPS 정확도도 엉망인 것 같은데다가 결정적으로 OpenStreet 지도에서 받아온 것 같은 데이터에 거리 이름이 하나도 안적혀있다. 하긴, 지도에 거리 이름이 적혀있었어도 길거리에 표지판이 하나도 없으니 도움이 안되기는 마찬가지였겠지만. 대략 남쪽으로 가야한다고 결론짓고 (멀리 무슨 탑같은 게 보여서 그 방향으로 걷기 시작한 것이었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어림 턱도 없는 다른 건물이었다) 조금 걸었다.
거리는 “오토”(auto - 오토바이를 개조한 3륜 릭쇼)랑 오토바이, 버스, 소수의 자가용과 택시, 그리고 인도와의 명확한 경계없이 걷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조금 걸었을 뿐인데 매연이 참을 수 없는 수준으로 목을 공격해온다. 길건너에 약국이 있길래 건너가서 throat candy라고 말하니 뭔가 건네줬다. 집에 두고온 GX-100 배터리를 아쉬워하며 AAA 배터리를 사봤는데 뭘 잘못한 건지는 몰라도 작동이 안된다(배터리 자체에 charge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목캔디 6개랑 AAA 배터리 4개를 샀는데 천원쯤 했던가?
이쯤에서는 걸어서 Charminar에 가보겠다는 생각은 포기하고 기왕 여기 왔으니 나도 오토를 한 번 타보겠다 마음을 먹는다. 가이드 등에 보면 기왕이면 미터가 달린 오토를 고르라고 돼있지만, 미터기가 달린 오토 운전사를 쳐다봐도 일단 어디가냐며 물어서 가격부터 부른다. “80루피?” 싫다고 돌아서다가 차마 1.5파운드가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 맘을 바꿨다. “60에 할래?” “70루피” “OK”.
이 친구 안되는 영어로 나한테 열심히 하이드라바드의 특산물은 진주라고 설명을 하더니 뭔가 쇼핑을 시키고 싶었는지 골목에 오토를 세우고 얼른 달려가 무슨 가게에서 전단지를 얻어온다. 미안하지만 딱 잘라서 쇼핑은 됐고 Charminar로 가자고 그랬더니 다시 시동을 건다.
생각보다 멀었다. 그러니까 나는 별로 “근처"까지 오지 못한 거였다. 한 15분은 달렸나? 멀리서 탑 4개가 모습을 드러낸다. Charminar는 4개의 minar(이슬람 사원에 붙은 탑)이라는 뜻이라는데 문득 톨킨이 LotR에서 Minas XXX라고 이름붙인 도시들도 연관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방금 찾아보니 맞다 - Minas Tirith는 엘프들의 언어로 Tower of Watch라는 뜻이라고).
오토에서 내리면서 다시 100루피 지폐를 내미니 이친구는 잔돈이 부족하다며 3루피만 덜받으랜다. 그러지 뭐;;; 내리자마자 누가 선글라스 케이스를 내밀며 “안녕하세요” 한다. 위치는 재래시장 한복판. 5시 전엔 Charminar에 들어갈 수 있다는데 시계를 보니 벌써 4시 45분. 그냥 관뒀다. 배기가스와 혼잡한 시내 교통을 굽어보며 서 있는 이 탑에는 어딘지 좀 청승맞은 데가 있다.
바로 옆에는 무굴제국 치하에서 17세기에 완성됐다는 Mecca Masjid가 서 있다.
마당에 서서 건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짐 맡아주는 창구 앞에 앉아있던 경비병 두 명이 자꾸 나를 부른다. 왜 들어가서 보지 거기만 서 있냐고 묻는다. 흠.
“넌 기독교도야?”
“아니”
“그럼 불교?”
“아니 - 난 종교가 없는데”
“그럼 공산주의자구나?”
“아닌데. 뭐야, 종교가 없으면 공산주의자야? 인도 법은 그래?”
“인도엔 법 같은 거 없어”
으음.
달리 할 일도 없다 싶어 안에 들어가보기로 한다. 경비병들한테 가방을 맡기고 사원에 들어갔다. 신발을 벗어야 하는데, 신발을 맡아준다며 건물 앞에 앉아 있는 할머니가 돈을 좀 달래고 (그 앞에 벗어두니 뭔가 번호가 적힌 나무조각을 주는데 내 신에 같은 번호를 표시한다거나 전혀 하지 않았으니 뭔가 관리비를 받기 위한 요식행위라고 밖에는….), 나름 영어가 되는 아저씨가 잘 알아듣지도 못하겠는 무굴제국 왕과 왕비들 이름을 읊으며 무덤을 안내하더니 돈을 좀 달래고, 현자풍의 할아버지가 무슨 왕비의 묘에 헌화를 하라며 꽃송이를 쥐어주더니 돈을 좀 달랜다. 푼돈을 좀 쥐어주고 나와서 짐을 찾을 때는 그냥 내가 먼저 웃으며 10루피인가를 경비병 친구한테 건넸더니 말없이 받는다. 이렇게 하는 대신 문 앞에서 표를 팔았다면 더 편했을까, 혹은 더 “인도스러웠을까(그게 뭐든 간에)” 하는 생각이 든다.
주변 시장 골목을 한 바퀴 도는데 다들 대단히 비밀스런 거래라도 해주겠다는 듯이 유일한 외국인인 나에게 “스-읏” 하는 혓소리를 내면서 부른다. 인도 전통의상은 정말이지 필요가 없어요;;; 골목을 빠져나와 다시 Charminar 앞에 섰는데, 호텔로 어떻게 돌아가야되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시내에서 전화해서 차를 부르면 30분 안에 온뎄는데, 왠지 이 아수라장으로 차를 부르면 30분은 커녕 1시간도 더 걸릴 것 같다. 일단 아까 오토를 타고 온 길을 머릿속에 되새기면서 북쪽으로 걸어본다.
한참을 걷다보니 주변이 어둑어둑. 기도 시간이 됐는지 시내 군데군데 있는 사원에서 기도문이 방송되기 시작한다. 끊임없이 울려대는 경적소리와 오토바이 엔진 소리 위에 얹히는 기도 소리를 어떻게 표현해야할 지 모르겠다. 퇴근시간이어서인지 도로는 더욱 막히고, 사람과 차가 뒤범벅이 된 사이에서 보도 아무데나 누워 잠을 청하고 있는 사람들 모습에 왠지 절망적인 기분이 든다. 이쯤에서는 8시 반에 발제자들을 위해 주최측이 마련했다는 저녁 자리에 시간맞춰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왠지 모르게 계속 걸어야할 것 같은 이상한 오기 같은 게 발동한다. 다리아픈줄도 모르고 계속 터벅터벅 걸었다.
결국 한시간여를 걸어서, 처음에 버스에서 내린 데 부근이 분명한 교차로까지 왔다. 한데 여전히 정확히 내가 내린 장소는 기억을 못하겠다. 호텔에 전화를 할래도 내가 어디 있다고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드니 낭패인가 싶은데 이게 왠일, 예약 없이 길에서 잡는 건 꿈도 꾸지 말라던 빈택시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중간에 기사가 내가 도무지 기억을 못하겠는 어두운 길을 택해 달리는 바람에 잠깐 동안 ‘나 무슨 이상한 차에 탄건가’하는 생각이 들 무렵, 멀리서 컨벤션 센터가 보였다. 차가 멈추자 호텔 직원이 깍듯이 문을 열어 반긴다. 시내와는 전혀 다른 세계다.
주최측 만찬은 정원 옆에 자리잡은 멕시칸 식당(뜬금없다)의 야외 테이블에서 펼쳐졌고 매우 즐거웠다. 목이 붓고 몸살기운이 찾아와서 새벽에 잠을 몽땅 설쳤다. 아침에 컨퍼런스에 등록하며 구글 직원들한테 혹시 타이레놀 좀 구할 수 없겠냐고 물었더니 그거보다 이게 약발이 좋으니 너도 이참에 넘어오라며(?) 주머니에서 Advil을 꺼내서 준다. 해석이 좀처럼 불가능한 구시가의 혼잡상을 뒤로하고 컨퍼런스가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