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ld by an idiot

혐오집단들은 어떻게 온라인 플랫폼의 맨낯을 드러냈는가

원문: How hate groups forced online platforms to reveal their true nature

John Herrman

글 삭제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횃불에 불을 붙이기도 전에 시작됐다. 샬롯츠빌 집회를 기획하는 데에 사용된 페이스북의 “우파 단결(Unite the Right)” 페이지는 행사 하루 전에 삭제되었고, 관계자들은 준비를 위해 다른 플랫폼으로 옮겨가야만 했다. 그리고, 참가자 중 한 명이 (역자주: 극우시위를 반대하는) 반대편 시위자들을 차로 덥쳐 헤더 헤이어가 숨지고 최소 19명이 부상을 당한지 수 시간에서 수 일 내에, 인터넷 회사들은 집단적인 삭제에 들어갔다.

페이스북은 “우파 척살단(Right Wing Death Squad)”, “백인 민족주의 동맹(White Nationalists United)” 같은 류의 페이지들을 모두 차단(ban)했다. 레딧은 몇몇 다른 그룹과 함께 “물리적 제거(Physical Removal)“라는 이름의 커뮤니티를 차단했는데, 이 그룹의 운영자는 주말에 벌어진 (역자주: 헤더 헤이어의) 죽음을 “도덕적으로 정당한 행위"라고 지칭했었다. 트위터는 공개되지 않은 숫자의 계정을 정지시켰는데, 이 중에는 공개적으로 파시스트적인 4chan의 “정치적으로 안올바름(Politically Incorrect)” 게시판 (/pol/)과 관련된 계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게이머들을 위한 메신저이자 이번 행사 주최자들이 사용했던 채팅 앱 디스코드(Discord)에서는 유명한 백인 우월주의자가 헤더 헤이어의 장례식을 방해하자는 주장을 폁쳤고, 디스코드는 황급히 이를 삭제했다.

각종 제재조치는 벽안에 갇인 소셜 플랫폼을 넘어 다양한 온라인 서비스로 번져나갔다. 이번 행진과 그에 따른 죽음을 촉발시킨 네오 나치 사이트 데일리 스토머(The Daily Stormer)는 도메인 등록 및 호스팅 서비스 업체인 고대디(GoDaddy)로부터 차단 당했고, 몇 시간 뒤엔 구글의 호스팅 서비스 그리고 마지막으로 뉴스레터를 보내기 위해 사용하던 SendGrid로부터도 차단을 당했다. Paypal은 백인 민족주의자 리처드 스펜서의 계정을 차단했다: 스펜서는 얼마 뒤 본인의 웹사이트인 Squarespace로부터도 차단당했다. AirBnB는 행사 전부터 샬롯츠빌에 거주하는 회원들 일부의 계정을 삭제했으며, “네오 나치와 alt-right,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보여준 폭력과 인종주의, 혐오는 세상 어디에도 설 곳이 없을”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수요일쯤 되자 심지어 Spotify마저도 “백인 우월주의자” 음악을 라이브러리에서 지우기 시작했다.

대중의 비탄과 분노에 대한 응답의 일환으로 각종 플랫폼들이 급작스런 행동을 취한 것은, 언뜻 보기에는 도덕적인 각성처럼 보이고, 이들이 국가/시민에 대한 책임감을 점차 크게 느끼고 있다는 증거인 것 같다. 어쩌면 자신들이 호스트하는 커뮤니티들을 손놓고 방관하던 모습에서 감시하고 규제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는 신호로 볼 수도 있을 정도이다. 우파 사용자들은 이러한 분석을 거꾸로 뒤집어서, 금새 자신들의 표현의 자유가 침해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을 완벽하게 설명하지도 못할 뿐더러 오직 두 집단, 즉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과 그들이 차단한 사용자들만을 위한 설명일 뿐이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인터넷 플랫폼의 약진은 우리에게 전례없고 역동적인 무엇인가을 약속했다: 정치인, 언론, 로비스트, 시민, 전문가, 기업 등 모든 주체를 한 지붕 아래에 어우르는 활동 공간이 바로 그것이다. 인터넷 회사들은 이전의 어떤 공론의 장(public sphere)도 제공할 수 없었던 것을 약속했다: 실재하는 10억 단위의 사용자, 그리고 관심 그룹이 서로를 발견하고 움직이고 가시화 및 영향력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 말이다. 마치 자유처럼 느껴지고 기능하기도 했자만, 이 플랫폼들은 언제나 상업적인 흉내(simulation)일 뿐이었다. 이러한 (역자주: 공론의 장과 상업적 정체성 사이의) 모순은 인터넷 회사들에게는 근본적인 것이다. 웹 인프라를 제공하는 클라우드플래어(CloudFlare)의 경우만큼 이런 긴장을 잘 보여주는 예도 없다. 이 회사의 대표인 매튜 프린스는 데일리 스토머를 차단하라는 지속적인 압력에 결국 굴복했다. 하지만 차단 결정은 임의적인 것이었고, 회사의 공개된 정책에는 근거가 없었다. 이 점이 프린스를 괴롭혔다.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프린스는 “아침에 일어났는데 기분이 별로였기 때문에 누군가가 인터넷에 있으면 안된다고 결정"한 셈이라며, “아무도 그런 권력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온라인 플랫폼들은 사용자들에게 전례없는 자유를 허용하지만, 이 자유는 언제 어느때고, 그리고 아무런 이유에서나 사라져버릴 수 있다. 소셜 플랫폼들은 자신들의 고객을 “사용자(user)“나 “공동체의 구성원(members of community)“과 같이 비유적인, 거의 민주주의적인 용어를 이용해 지칭한다. 이 업체들의 지도자들은 정치인같은 제스쳐를 취하기를 좋아하며, 마크 주커버그같은 경우에는 실제 정치에 야망이 있는 것 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컨텐츠 및 사용자 차단 규정은 물론 분쟁 해결 과정등은 모두 법적 지배의 용어로 기술되어 있다 (예를 들어 차단된 사용자는 항상 “재심을 청구(appeal)“할 수 있다). 트위터나 레딧같은 서비스들이 골칫거리 사용자 또는 불쾌한(offensive) 컨텐츠를 처리하는 방식에 대한 의문은 언제나 표현의 자유를 언급하는 방어적 언어에 부딪혀왔다.

사적인 커뮤니티들을 키워나가는 과정에서, 이 회사들은 자유 민주주의의 옷을 빌려 입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임의로 만든 규정을 합리화하기 위해 권리의 언어를 빌려왔는데, 기술 전문 변호사 켄드라 앨버트에 따르면 이런 행태는 “법적인 부적"을 만드는 것과 같다. 이 행태는 일단 운영상 편리했고, 심지어 필수적이기까지 했다. 사용자들이 당신 회사 제품을 사용하는 방법에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면 이보다 좋은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역자주: 자유민주주의적 이미지는) 심지어 좋은 마케팅이기까지 하다. 공과 사 모두에 있어 개인의 삶을 광고 및 데이터마이닝 회사들에게 의존하려면, 아무래도 이 회사들이 단순한 회사 이상의 무언가라고 믿는 편이 마음이 더 편할테니 말이다. 하지만 인터넷 플랫폼들이 공론장의 다수를 점하고 언론은 물론 정치 조직들마저 호스트하게 되자, 이들의 내적인 모순을 무시하는 것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문제는 샬롯츠빌 훨씬 이전부터 심각했다.

Vice가 제작한 이번 시위에 대한 긴장감 넘치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데일리 스토머에 글을 기고한다는 한 남자가 리포터 엘르 리브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봐서 알겠지만, 우린 이제 제대로 인터넷 밖으로 나오고 있어요”. 이 남자는 시위대의 규모를 통해 자기가 온라인에서 참여하던 운동이 실재한다는 확신을 얻고 있었다. “우리도 우리의 밈(meme)을 뿌리고, 인터넷에서 조직을 만드고 있었어요. 이제 그 사람들이 나오는 거죠”: “반-백인, 반-미국” 쓰레기들에 대한 불평불만을 늘어놓기 전에 남자가 덧붙였다. 이런 감상은 레딧과 4chan, 그리고 인접한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활동적이고 오래된 극우 단체들에 널리 퍼지고 있다.

표현과 집회의 자유에 대한 언어를 가장 화려하게 빌려 써온 플랫폼들이, 동시에 플랫폼을 전복시키려는 조직들과 가장 심하게 싸워온 플랫폼들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 플랫폼에 존재하는 트롤들의 커뮤니티는, 정치적인 의미에서는 허약한 자유 민주주의 국가 내에 존재하는 파시스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자신들이 기거하는 체제의 규칙과 보호를 이용해서 해당 체제를 전복시키거나, 자신들 모습대로 바꿔놓거나, 이도저도 안되면 그냥 부셔버리려고 한다.

하지만 이 트롤들이 힘을 얻은 것은 단순히 이들이 나쁜 마음을 먹고 규칙과 관습을 깨려고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의 힘은 오히려 트롤이 플랫폼의 규칙과 관습이 애초에 이기주의적이고 냉소적이라는 사실을 간파한 데에서 기인한다. 왜냐면 이들 플랫폼들은 스패머, 욕설, 정부 규제 등과 관련해서는 항상 별다른 논란조차 없이 임의의 규칙을 정해댔기 때문이다. 이 과격파들은 공론의 보호자라는 어거지 역할과, 사익을 추구하며 하고 싶은 대로 뭐든 하는 하는 이윤집단의 역할 사이에 존재하는 틈에서 기회를 발견했다. 참여적인 수사여구와 별개로, 소셜 플랫폼은 민주주의보다는 전체주의에 더 가깝다. 그러니 전체주의적 성향을 가진 이들이 소셜 플랫폼의 작동 방식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이용했다는 것도 어느 정도 말이 되는 이야기이다.

이번 사건은 이들 혐오 집단들이 기다려오던 사건이기도 했다. 애초에 출구는 공개적이고 일방적으로 차단당하는 것 밖에는 없었으며, 어떤 면에서는 이들에게 딱 맞는 결말이었다. 작년 한 해 동안 소셜 플랫폼의 극우 그룹들은 플랫폼 난민, 그리고 검열의 피해자라는 정체성을 선점해왔다. 이들은 이번 사건, 혹은 유사한 어떤 사건에 대한 대비를 해오고 있었다. 극우 버전의 트위터와 레딧같은 서비스는 물론 심지어 아직까지 무법지대에 가깝다는 4chan의 극우 대안마저 이미 존재한다. GoFundMe와 Kickstarter의 극우적 대안도 있으며, 심지어 Patreon(역자주: 자기가 좋아하는 컨텐츠 생산자에게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보낼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의 대안이라는 Hatreon마저 있다. 대부분의 극우 버전 대안과 마찬가지로, Hatreon 또한 스스로를 “절대적 표현의 자유를 지지"한다고 표방하며 주류 플랫폼들이 먼저 빌려왔던 대의 명분을 빌려왔다. 피해자 서사는 이들이 보유한 것 중 가장 유용한 서사전략이며, 이들이 소수 과격파를 벗어나 더 큰 세를 얻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다. 하지만 이 피해자 서사는 이들에게 목소리를 안겨 줬던 바로 그 플랫폼 회사들이 이미 오래 전에 이들에게 써 준 것이나 다름 없다.